설화 및 전설 관음보살이 나타난다는 낙산사 홍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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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2 댓글 0건 조회 8,775회 작성일 18-05-15 00:54본문
江原道 襄陽 洛山寺는 신라 義湘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이 절 아래 관음보살 聖地인 紅蓮庵이 있으며, 이 암자는 관음보살이 머문 곳이라하여 옛날부터 신성시하여 불교 성지순례 사찰에 포함되어 왔다. 義湘과 元曉는 동해안 바닷가 어느 곳에 관음보살이 머문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찾아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 두 스님과 懷正, 梵日대사가 襄陽 洛山 주위에서 인간으로 현신한 관음보살을 뵈었다고 쓰고 있다. 관음보살이 사람, 파랑새, 나비 등으로 세상에 나타나기도 하므로 불심이 없는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보지 못한다고 한다.
義湘대사는 唐나라에 유학하여 知儼(지엄)대사로부터 華嚴學을 배우고 귀국한 뒤 洛山寺를 지었다. 그는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보살의 명에 따라 洛山寺를 세웠다고 한다. 義湘은 동해 바다에 관음보살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고 목욕재개한 뒤 바닷가 절벽 위에 7일간 기도를 했는데 마지막 날 기도를 끝내고 새벽에 앉았던 방석을 바닷물 위에 띄워 보냈다. 그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그를 바위굴 속으로 안내하였다. 義湘은 굴속에서 오랫동안 기도를 하니 하늘에서 수정염주 한 꾸러미가 내려왔는데, 이를 받고 굴 밖으로 나오다가 바다용으로부터 如意珠(구슬)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아직 관음보살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데 대하여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믿고 목욕재개한 뒤 다시 바위절벽 위에 앉아 7일간 주야기도를 하였으나, 관음보살은 나타나지 않았다. 義湘은 낙심하여 바다에 투신하였는데, 그 때 바다 쪽에서 흰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달려오면서 바다로 떨어지는 義湘을 받아 안아 바위굴로 데려갔다. 혼절한 義湘이 깨어나 보니 그는 바위굴속에 누워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음보살이 義湘에게 이르기를 "이곳 뒷산 위에 대나무 한쌍이 솟아날 것이다. 그곳에 꼭 절을 지어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義湘은 굴밖으로 나와 관음보살이 이르는대로 산을 찾아가 보니 과연 대나무 두 줄기가 산에 솟아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대나무가 솟아난 자리에 절을 지었고, 절 안에 관음보살상, 용으로부터 받은 염주와 여의주(구슬)를 안치하였다. 대나무는 절을 지을 때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며, 이 대나무는 관음보살상이 잠시 대나무(觀音竹)로 변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義湘은 文武王 11년(671년)에 관음보살에 바치는 절을 세워 절 이름을 洛山寺라고 하였다.
洛山寺는 관음보살이 계신다는 "普陀洛迦山(보타낙가산)"의 산 이름을 따서 지은 절 이름이다. 義湘이 도를 깨우치고 관음보살을 친견한 바위절벽을 훗날 義湘臺라고 부르며, 풍광이 수려한 洛山寺는 오늘날 關東八景에 속한다.
한편, 훗날 元曉대사가 洛山寺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길에 중도에서 관음보살을 만나고도 관음보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스스로 불심이 부족하여 결례했다고 하여 항상 뉘우쳤다고 한다. 이에 관련하여 三國遺事에 전하는 이야기를 보기로 한다. 元曉가 남쪽에서 洛山寺를 향하여 걸어오는 길에 襄陽 땅에 들어섰다. 가을철이 되어 농부들이 추수를 하고 있었는데, 길가의 논에 흰옷을 입은 아낙네가 벼를 베고 있었다. 元曉는 장난 삼아 그 여인에게 벼를 좀 달라고 요구하자 그 여인은 올해에는 흉년이 들어 벼를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자로부터 무안을 당한 元曉는 가던 길을 계속 걷다가 갈증을 느껴 이번에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에게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는데, 그 여인은 더러운 빨랫물을 바가지에 떠서 주었다. 원효는 화가 나서 그 물바가지를 쏟아버리고 손수 개울물을 떠 마셨다. 그때 마침 근처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스님, 그만 두십시오."라고 알 듯 말듯하게 지저귀면서 숲 속으로 사라졌다(원문에는 休醍 和尙(휴제호화상)으로 표현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에 차이가 있다. 이 표현을 불성이 부족하고 오묘한 부처세계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을 비유해서 한 말인지, 또는 이곳에 찾아와 더욱 수련하라는 의미인지 확실하지 않다.). 새가 앉았던 그 나무 아래 여자 신발 한 짝이 놓여있었다. 元曉는 궁금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여기면서 길을 재촉하여 洛山寺로 향했다. 元曉는 낙산사에 도착하여 법당 뜰에 있는 여자신발 한 짝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조금 전에 소나무 아래에 있던 신발과 꼭 같은 것이어서 놀랍고도 경외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오던 길에 만났던 벼 베는 여인, 빨래하는 여인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들 여인이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나타나 자신의 불심을 시험한 것으로 보았다. 관음보살을 직접 보았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희롱한데 대하여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뉘우쳤다고 한다. 관음보살이 元曉에게 계시를 주기 위하여 새로 변신하였는데 그 새를 훗날 觀音鳥라고 불렀고, 그 새가 앉았던 소나무를 觀音松이라 하였다. 元曉는 시골여인으로 현신한 관음보살과 자기도 모르게 禪問答을 한 것이다.
義湘대사는 唐나라에 유학하여 知儼(지엄)대사로부터 華嚴學을 배우고 귀국한 뒤 洛山寺를 지었다. 그는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보살의 명에 따라 洛山寺를 세웠다고 한다. 義湘은 동해 바다에 관음보살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고 목욕재개한 뒤 바닷가 절벽 위에 7일간 기도를 했는데 마지막 날 기도를 끝내고 새벽에 앉았던 방석을 바닷물 위에 띄워 보냈다. 그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그를 바위굴 속으로 안내하였다. 義湘은 굴속에서 오랫동안 기도를 하니 하늘에서 수정염주 한 꾸러미가 내려왔는데, 이를 받고 굴 밖으로 나오다가 바다용으로부터 如意珠(구슬)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아직 관음보살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데 대하여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믿고 목욕재개한 뒤 다시 바위절벽 위에 앉아 7일간 주야기도를 하였으나, 관음보살은 나타나지 않았다. 義湘은 낙심하여 바다에 투신하였는데, 그 때 바다 쪽에서 흰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달려오면서 바다로 떨어지는 義湘을 받아 안아 바위굴로 데려갔다. 혼절한 義湘이 깨어나 보니 그는 바위굴속에 누워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음보살이 義湘에게 이르기를 "이곳 뒷산 위에 대나무 한쌍이 솟아날 것이다. 그곳에 꼭 절을 지어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義湘은 굴밖으로 나와 관음보살이 이르는대로 산을 찾아가 보니 과연 대나무 두 줄기가 산에 솟아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대나무가 솟아난 자리에 절을 지었고, 절 안에 관음보살상, 용으로부터 받은 염주와 여의주(구슬)를 안치하였다. 대나무는 절을 지을 때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며, 이 대나무는 관음보살상이 잠시 대나무(觀音竹)로 변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義湘은 文武王 11년(671년)에 관음보살에 바치는 절을 세워 절 이름을 洛山寺라고 하였다.
洛山寺는 관음보살이 계신다는 "普陀洛迦山(보타낙가산)"의 산 이름을 따서 지은 절 이름이다. 義湘이 도를 깨우치고 관음보살을 친견한 바위절벽을 훗날 義湘臺라고 부르며, 풍광이 수려한 洛山寺는 오늘날 關東八景에 속한다.
한편, 훗날 元曉대사가 洛山寺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길에 중도에서 관음보살을 만나고도 관음보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스스로 불심이 부족하여 결례했다고 하여 항상 뉘우쳤다고 한다. 이에 관련하여 三國遺事에 전하는 이야기를 보기로 한다. 元曉가 남쪽에서 洛山寺를 향하여 걸어오는 길에 襄陽 땅에 들어섰다. 가을철이 되어 농부들이 추수를 하고 있었는데, 길가의 논에 흰옷을 입은 아낙네가 벼를 베고 있었다. 元曉는 장난 삼아 그 여인에게 벼를 좀 달라고 요구하자 그 여인은 올해에는 흉년이 들어 벼를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자로부터 무안을 당한 元曉는 가던 길을 계속 걷다가 갈증을 느껴 이번에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에게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는데, 그 여인은 더러운 빨랫물을 바가지에 떠서 주었다. 원효는 화가 나서 그 물바가지를 쏟아버리고 손수 개울물을 떠 마셨다. 그때 마침 근처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스님, 그만 두십시오."라고 알 듯 말듯하게 지저귀면서 숲 속으로 사라졌다(원문에는 休醍 和尙(휴제호화상)으로 표현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에 차이가 있다. 이 표현을 불성이 부족하고 오묘한 부처세계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을 비유해서 한 말인지, 또는 이곳에 찾아와 더욱 수련하라는 의미인지 확실하지 않다.). 새가 앉았던 그 나무 아래 여자 신발 한 짝이 놓여있었다. 元曉는 궁금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여기면서 길을 재촉하여 洛山寺로 향했다. 元曉는 낙산사에 도착하여 법당 뜰에 있는 여자신발 한 짝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조금 전에 소나무 아래에 있던 신발과 꼭 같은 것이어서 놀랍고도 경외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오던 길에 만났던 벼 베는 여인, 빨래하는 여인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들 여인이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나타나 자신의 불심을 시험한 것으로 보았다. 관음보살을 직접 보았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희롱한데 대하여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뉘우쳤다고 한다. 관음보살이 元曉에게 계시를 주기 위하여 새로 변신하였는데 그 새를 훗날 觀音鳥라고 불렀고, 그 새가 앉았던 소나무를 觀音松이라 하였다. 元曉는 시골여인으로 현신한 관음보살과 자기도 모르게 禪問答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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