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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및 전설 태종춘추공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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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2 댓글 0건 조회 651회 작성일 18-05-1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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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에 이르기를 총장 원년(668년)에 신라에서 청병을 한 당군이 평양의 교외에 주둔을 하면서 서신을 보내어 급히 군수물자를 보내달라고 했다. 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묻기를
"적국에 들어가서 당병이 주둔하여 있는 곳으로 가기에는 지세가 험하여 극히 위험하다. 그러나 당나라 군사의 식량이 떨어졌는데도 군량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역시 옳지 못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하였다.
김유신이 아뢰었다.
"신 등이 능히 군수물자를 수송하겠으니 청컨대 대왕께서는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에 유신과 인문 등은 군사 수만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국경 안으로 들어가 군량 2만곡을 수송하여 주고 돌아오니 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또한 군사를 일으켜 당군과 합세를 하고자 윳니이 먼저 연기, 병천 등 두사람을 보내 합세할 기일을 묻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난새(鸞)와 송아지를 그려 보내 주었다. 사람들이 그 뜻을 몰라 사람을 시켜 원효에게 청해 물으니, 해석하여 말하기를
"군사를 속히 돌이키라는 말이다. 난새와 송아지를 그린 것은 두 반절(反切)을 이른 것이다."
이에 유신은 군사를 돌이켜 패수를 건너려 할 적에 군령으로 말하기를
"나중에 강을 건너는 자는 베리라."하였다.
군사들의 반이 강을 건너갈 적에 고구려 군사가 와서 미쳐 건너지 못한 병사들을 죽였다. 다음날 유신은 고구려 병사들을 추격하여 수만 명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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