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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및 전설 낭지승운(朗智乘雲) 보현수(普賢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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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2 댓글 0건 조회 859회 작성일 18-05-1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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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량주 아곡현의 영취산에 이상한 중이 있었다. 암자에서 수십년을 살았으나 고을에서는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며, 스님도 또한 자기의 성명을 말하지 않았다. 늘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신통력이 있었다.
용삭 초년에 지통이란 중이 있었는데 본디 이량공 집의 종이었다. 일곱살에 출가했는데 그 때 까마귀가 와서 울면서 말했다.
"영취산에 들어가 낭지의 제자가 되라."
지통은 이 말을 듣고 그 산을 찾아가서 골짜기의 나무 밑에서 쉬고 있다가 문득 이상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보현보살인데 네게 계품(戒品)을 주려고 한다."
하더니 계를 베푼 후 숨어 버렸다. 그 때 지통은 마음이 두루 넓어지고 지증(智證)이 문득 두루 통해졌다. 다시 길을 걷다가 한 중을 만났다. 그가 낭지 스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묻자 중이 되물었다.
"왜 낭지를 묻느냐?"
지통이 신기한 까마귀의 일을 자세히 말했다. 그러자 중은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바로 낭지인데 지금 집앞에 또한 까마귀가 와서 알리기를, 거룩한 아이가 바야흐로 스님께로 오고 있으니 마땅히 나가 영접하라고 하여 이렇게 나와 맞이하는 것이다."
하며 손을 잡고 감탄하고 말했다.
"신령스런 까마귀가 너를 깨우쳐 내게로 오게 했고, 또 내게 알려 너를 맞이하게 하니 정녕코 상서로운 일이다. 아마 산령(山靈)의 은밀한 도움인가 보구나. 전하는 말에 산의 주인은 변재천녀(辯才天女)라고 한다."
지통이 이 말을 듣고 울며 감사하고 스님에게 귀의했다. 이윽고 계를 주려 하니 지통이 말했다.
"저는 동구 나무 밑에서 보현보살에게 이미 정계(正戒)를 받았습니다."
낭지는 감탄하고,
"잘했구나. 너는 이미 보살의 만분지계(滿分之戒)를 친히 받았구나. 나는 태어난 후 조석으로 조심하고 은근히 지성(보현보살)을 만나기를 염원했지만 오히려 정성이 감동되지 못했는데, 이제 너는 이미 계를 받았으니 내가 네게 아득히 미치지 못하는구나."
하며 도리어 지통에게 예했다. 이로 인해 그 나무를 보현수라 했다.
"법사께서 이 절에 계신 지가 오래 된 듯합니다."
지통이 말하자 낭지는 대답했다.
"법흥왕 정미(527)에 처음으로 여기 와서 살았는데 지금은 얼마나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통이 이 산에 온 것이 문무왕 즉위 원년(661)이니 계산해 보면 135년이나 된다."
지통은 후에 의상의 처소에 가서 높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불교의 교화에 이바지하엿으니, 이가 곧 추동기(錐洞記)의 작자이다.
원효가 반고사에서 있을 때 늘 낭지를 찾아가 뵈니 그는 원효에게 초장관문과 안신사심론을 저술하게 했다. 원효가 저술을 끝마친 후에 은사 문선을 시켜 책을 받들어보내면서 그 편미에 싯귀를 적었는데 이러하다.
      서쪽 골짜기 사미는 공손히,
      동쪽 봉우리 상덕 고암 전에 예하노라
      가는 티끌 불어 보내어 영취산에 더하고,
      용연에 잔 물방울 던지도다.
산의 동쪽에 대화강이 있는데 이는 곧 중국 대화지의 용의 복을 빌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용연이라했다. 지통과 원효는 모두 큰 성인이었다. 이런 두 성인으로서도 그를 공경하여 스승으로 섬기었으니 낭지스님의 도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알 수 있다. 스님은 일찍이 구름을 타고 중국의 청량산에 가서 신도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는 잠시 후 곧 돌아왔는데, 그 곳 중들은 아무도 그가 사는 곳을 모르면서도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청량산 절에서 하루는 여러 중들에게 명령했다.
"항상 이 절에 사는 자는 제외하고 다른 절에서 온 중은 각기 사는 곳의 이름난 꽃과 진귀한 식물을 가져다 도량에 바쳐라."
낭지는 이튿날 산속의 이상한 나무 한 가지를 꺾어다 바쳤다. 그 곳의 중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이 나무는 범명으로 달제가라 하고 여기서는 혁(赫)이라 하는데, 오직 서천축과 해동의 두 영취산에만 있다. 이 두산은 모두 제10법운지로서 보살이 사는 곳이니 이 사람은 반드시 성자일 것이다."
마침내 그 행색을 살펴 해동 영취산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스님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고 그 이름이 나라 안팎에 나타났다. 나라 사람들이 그 암자를 혁목암이라 불렀다. 지금 혁목사의 북쪽 산등성이에 옛 절터가 있는데 그 곳이 그 절이 있던 자리다.
영취사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낭지가 일찍이 말하기를
"이 암자 자리는 가섭불 당시의 절터였으므로 땅을 파서 등항 두개를 얻었다."
고 하였다. 원성왕 때에는 대덕 연희가 이 산 속에 와 살면서 낭지스님의 전기를 지었는데, 이것이 세상에 퍼졌다고 했다.
화엄경을 살펴보면 제10은 법운지라 했으니 지금 스님이 구름을 탄 것은 대개 부처가 삼지로 꼽고, 원효가 1백몸으로 나누는 것 같은 것이다.
기리어 읊는다.
      생각하니 산에 숨어 수도한 지 백년간에,
      높은 이름 일찍이 세상에 아니 나고,
      산새의 한가한 지저귐 못 금하는가,
      구름타고 오가는 것 속절없이 알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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